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0년 한국시리즈 (문단 편집) === 7차전 === ||<-999><:> {{{#fab93d '''한국시리즈 7차전, 11.07(화), 18:00,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fab93d 수원 야구장}}}]] 14,000명 (매진)'''}}}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 '''[[두산 베어스|{{{#FFD700 두산}}}]]''' ||<:> [[조계현]] ||<:> 0 ||<:> 0 ||<:> 0 ||<:> 2 ||<:> 0 ||<:> 0 ||<:> 0 ||<:> 0 ||<:> 0 ||<:> '''2''' ||<:> - ||<:> - || ||<:> '''[[현대 유니콘스|{{{#fab93d 현대}}}]]''' ||<:> [[김수경(야구)|김수경]] ||<:> 0 ||<:> 2 ||<:> 0 ||<:> 3 ||<:> 0 ||<:> 0 ||<:> 0 ||<:> 1 ||<:> - ||<:> '''6''' ||<:> - ||<:> - || ||<-15> '''중계방송사: [[SBS|[[파일:SBS 로고(1994-2000).svg|width=35]]]] | 캐스터: 김정일 | 해설: 백인천'''[*타사중계7 KBS위성2TV : 전우벽-] || 결승타: [[톰 퀸란]](4회말 1사 1,3루서 좌중월 홈런) 승리투수: [[김수경(야구)|김수경]] 패전투수: [[조계현]] 세이브: [[임선동]] 홈런: 두산 – [[타이론 우즈]](4회 1점)/현대 – [[톰 퀸란]]'''(4회 3점/8회 1점)''' 심판 : 주심 허운/1루 나광남/2루 김호인/3루 /좌선 임채섭/우선 이규석 이날 시구는 '''[[선동열]]''', 시타는 '''[[최동원]]'''이 두 레전드가 맡았다. 이미 분위기를 빼앗긴 시궁창 홈 현대와 3연승으로 기세를 올린 상대 덕아웃 두산 '''과연 기적은 일어났을까?'''. 썰렁했던 1, 2차전과 달리 '''[[매진|1만4천여 관중이 꽉 들어찬 가운데 열린]]''' 한국시리즈 7차전. 3승 뒤 3연패로 코너에 몰렸던 현대는 1차전과 동일한 라인업을 유지하며 젊은 선발투수 [[김수경(야구)|김수경]]이 나왔다. 두산은 타선의 라인을 다시 짜면서 선발 투수는 1차전,4차전에서 등판한 노장 [[조계현]]이 다시 등장했다. 한국시리즈 들어 세 번째 선발 맞대결. 하지만 사흘 휴식 후 선발등판은 36세 노장 [[조계현]]보다는 아무래도 21세 영건 [[김수경(야구)|김수경]]에게 훨씬 유리했는데 결정적으로 1~6차전과 달리 7차전의 기온이 현격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몸 푸는데에 있어 조계현이 덜 풀렸기 때문이다. 현대는 힘도 떨어진데다 기온 때문에 제대로 몸이 풀리지 못한 조계현을 상대로 2회말 1사 1, 2루의 찬스를 잡은 뒤 8번 [[톰 퀸란]]의 우중간 2루타로 2점을 선취했다. 3연승의 기세가 남아있는 두산도 4회초 [[타이론 우즈]]의 좌중월 장외 솔로포와 [[강혁(야구)|강혁]]의 추격의 좌전 적시타로 2득점, 장군에 멍군으로 받아쳤다. 하지만, 현대는 4회말 곧바로 달아날 찬스를 잡았다. 선두 [[이숭용]]의 2루타와 [[이명수(1966)|이명수]]의 볼넷으로 만든 1사 1, 3루. 이날의 영웅 [[톰 퀸란]]이 타석에 등장했다. 처음 세 개의 공이 전부 파울이 되며 볼카운트 투스트라이크 노볼의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조계현이 4구째 싱커를 던졌고, 퀸란의 배트가 번개처럼 회전했다. 좌중월 담장을 훌쩍 넘는 결승 3점 홈런. 퀸란은 8회말에도 선두타자로 나와 팀의 우승에 쐐기를 박는 솔로포[* 6타점 모두 퀸란 혼자서 뽑아냈다.]를 쳐내며, 외국인 선수에게 MVP를 주기 망설이는 투표인단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점수 6-2. 현대는 5-2로 앞선 8회부터 선발 요원 [[임선동]]을 마무리로 투입, 승부에 말뚝을 박았다. 마지막 두산 타자 [[이도형]]의 플라이볼이 [[김인호(야구)|김인호]]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간 순간, 덕아웃에 있던 모든 선수가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방송에서는 중견수였던 [[전준호(1969)|전준호]]가 좌익수 자리쪽으로 커버하기위해 뛰어가던 것을 중계진이 전준호라고 콜을 한데다 전준호가 롯데에서 현대로 트레이드 된 후로는 중견수보다는 좌익수로 자주 나왔던 터라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전준호가 잡은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도 많다.] 창단 이후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자 [[1998년 한국시리즈]] 이후 2년만의 우승. 6타점을 기록한 퀸란은 역대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타점 타이 기록을 세웠다. 한편 두산은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가는 투지와 저력을 선보이며, 승자 못지않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현대 유니콘스|현대]] 선수단은 샴페인을 뿌리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지만, 정작 팀의 우승을 기뻐해야 할 팬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7차전 매진을 기록하긴 했지만, 당시 서울에서 원정온 두산 팬들의 비중이 높았고 현대쪽 관중석은 계열사 직원 비중이 적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해 현대는 [[삼미 슈퍼스타즈|삼미]] 시절부터 연고지였던 [[인천광역시|인천]]을 [[현대 유니콘스/연고이전|버리고]] [[야반도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서울]] 입성을 위한 전진기지로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 야구장]]을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인천 팬들은 현대의 배신에 이를 갈았고[* 실제로 3년후에 열린 현대와 SK의 [[2003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당시 SK 팬들은 현대 선수단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그 당시 야구팀의 존재가 아직 생소했던 수원 팬들은 현대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사실 1990년대부터 제2구장으로 수원야구장을 사용하고 있어서 팬이 없는건 아니었는데, 어차피 곧 떠날 팀이라는 인식도 강했던데다 이 무렵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이라 흥행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힘들었다. 역으로 [[kt wiz]]가 수원에 자리잡은 이후로는 야구와 축구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이제는 수원 삼성이 예전에 비해 흥행이 잘 안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성적은 [[1위]]를 달리지만 [[흥행참패동맹|팬이 없는 팀]]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2000년 현대의 우승이 남긴 의문이다. 당시 모기업인 [[SK하이닉스|현대전자]]에서 무작정 서울연고를 밀어붙였기에 프런트, 현장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지만 모기업에서 밀어붙인 대로 진행되었다. 정작 현대전자가 이듬해 바로 [[부도]]나는 바람에 서울연고에 입성하는 건 실패했다는게 가장 큰 문제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